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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잡부의 겐세이

[분당보궐선거] 그들이 5시 30분에 일어난 이유를 아는가?

엊저녁께 부터 오밤중을 가르며 실시된 허접한 MBC의 100분 토론을 보고 이 글을 때린다.

잔치는 끝났다.

정치판 선거를 일컬어 개판이라 하는 것은 잔치판에 동네 가이들이 몰려 들어 왈왈 짖는 소리가 시끼러워 그러는 것이라는 고언(苦言)처럼 우리네 정치판의 잔치 ‘선거’는 끝났다.

그란디...

결과에 대하여 분석하는 토론의 장에서 나타난 말들이 심금을 울리는 우리네의 말들이 아니기에 덜 떨어지는 한갑부의 생각을 좀 적어 보고자 한다.

결과에 대한 분석은 있는 그대로 하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국민은 위대하다.” 이렇게 말이다.

먼저 김해부터 말해보자.

어떻게 노무현의 고향에서 노무현 적통의 계보라 불리는 후보가 이리 깨질 수 있는가 결국은 이게 유시민의 한계가 아릴까 싶다. 물론 무명의 후보가 총리후보까지 갔던 사람과 박빙의 승부를 했다는 쓸데없는 말을 씨부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안방에서 무참히 무릎을 꿇은 것이다.

김해 선거의 결과는 야권통합 후보의 탄생 과정에서 야권 전체를 아우렀는가와 직결된다. 즉 후보를 내는데 있어서 민심의 축을 반영하여야 하는 과정을 협상으로 결론지음으로 해서 단일화라는 협상에서는 승리했지만 결국 선거에서는 실패하는 자충수를 둔 것이다.

야권 단일화의 제일 목표가 당선이라고 한다면 앞으로의 선거에서 야권 단일화 후보를 어떻게 선출해야 하는지 충분히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하이라이트인 분당이 이 선거의 결론이었다.

먼저 분당이 민주당의 승리인가에 대하여 고개를 가로 저어 본다.

분당 선거의 거대 의미는 그들이 왜 5시 30분에 일어났으며 칼 퇴근 해야 했는가를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

“정치가 잘 되면 국민은 무관심 하다.” 동의할 수 있는 말 아닌가?

그럼...

“살기 힘들면 바꾸고 싶다.” 난 강하게 동의한다.

원래 민주당 하면 원조격 선거구호가 “못 살겠다 갈아보자.” 아니던가?

분당의 결과는 이 의미의 표출이었다.

“바꾸고는 싶은데 바꿀만한 대안은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두면 더 개판 될거 같고...”

아마도 분당 사람들의 심정은 이런거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어쩌다 보니 우리 민족은 세계 정당사에 유래가 없는 선거일에 투표율이 높다고 벌벌 떠는 어이 상실의 정당을 가졌고 사회의 중추가 되어 사회적 결정에 적극적인 의견이 반영되어야 하는 20대 30대 40대 50대의 투표보다도 현업에서 물러나 부양층에 속하는 세대의 투표에 지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것에 대한 불만...

정말 살기 힘든데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현실이 지침 몸의 피로를 뒤로하고 5시 30분 기상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는 아래 링크의 조선일보를 살펴보면 그래프로 잘 그려 놓았다.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10429075805078&p=chosun&RIGHT_COMM=R1

공부를 불가능하게 하는 학자금 대란.

생존의 기반이 되는 살 집이 없어지는 전세대란.

먹을 것 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사상최대의 고물가.

그래도 정치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대한 배신감과 참여하지 않으면 바뀌지도 않는다라고 하는 절박감에 넥타이 부대를 유모차 부대를 투표장에 몰아넣은 것이다.

조선일보에 손학규의 승리를 수도권 몰사(沒死)의 전조로 보는 듯한 기사가 실렸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4/28/2011042800227.html

아마도 ...

다음 총선에서 아주 현실감 있는 적중도 높은 예상이라 생각한다.

그럼 한갑부가 생각하는 분당보궐선거의 결과의 분석은 무엇인가? 그건...

“이대로 민생을 외면하시면 담에 몰사(沒死) 합니다.”

이다.

100분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여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백성 사는 모습에 대하여 외면하고 인식조차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지극히 떨어지는 현실감으로 분석이라는 허울을 쓰고 말하는 논쟁들을 지켜보면서 승질나서 이르키 지껄여 본다. 

“잘 좀 혀라... 인자 보는 것도 죽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