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세다대학도서관소장 早稲田大学図書館 - (齊)桓公舉
장자(莊子) 천도편(天道篇) 환공윤편문답(桓公輪扁問答)의 사례를 통하여 보는 교육
제(齊) 환공(桓公)은 춘추오패(春秋五覇)중 첫째로 꼽는 패자로 구합제후(九合諸侯-회맹(會盟))의 위업을 통하여 공자(논어(論語))로부터 바르고 거짓이 없는 인물이라는 평을 받는 유일한 패자(覇者)이다.
환공윤편문답(桓公輪扁問答)의 사례는 장자(莊子) 천도편(天道篇)의 구절로 수레 고치는 목수 윤편(輪扁)이 성인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을 자신이 기술을 전수하는 것에 빗대어 “고지인여기불가전야사의 연즉군지소독자 고인지조백이부 (古之人與其不可傳也死矣. 然則君之所讀者, 故人之糟魄已夫) - 옛 성인도 깨달음(성인과 깨달음이 같이 죽었다.)을 전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군이 읽는 책은 옛사람의 찌기미일 뿐이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일러준다.
성인이 깨달음이 있었으나 그를 전해주는 것은 말과 글인데 이것이 온전치 못하다는 말이다. -유수존언어기간(有數存焉於其間)
이에 대하여 장자는 글(형(形),색(色)) 말(명(名),성(聲))으로는 깨달음을 전하지 못한다 하였다.
“세인이형색명성 위족이득피지정(世人以形色名聲 爲足以得彼之情)-세인들은 모양과 색과 이름과 소리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한다.”
“부형색명성 과부족이득피지정(夫形色名聲 果不足以得彼之情)-그러나 모양, 색, 이름, 소리로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즉 성현이 깨달음을 통하여 얻은 진리는 글과 말로서 전하여 질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주역(周易) 계사 상전(繫辭 上傳)에서 공자(孔子)가 말한 “서불진언 어불진의(書不盡言 言不盡意) - 글은 말을 다할 수 없고 말은 뜻을 다할 수 없다.)”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하겠다.
교수자가 가르치고자 하는 바와 깨달음을 일깨우고자 하는 바의 전달하는 방편은 오직 텍스트상의 글자와 말을 통한 설명인데 이를 통하여서는 경험을 통한 체득과 세월을 통한 익힘의 깨달음 모두를 결코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이다.
즉 교수자로 하여금 학습자에게 일방적 지식전달자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진리를 갈망하며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방향을 제시하고 방법을 일깨우는 능동적 역할을 기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며 학습자 스스로 익히고 배움에 힘써 자기 학습을 통한 스스로의 성취를 이루어내게 하여야만 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달된 오늘날의 지식전달은 글(그림을 포함한다.)과 말을 더한 정도가 아닌 주역에서 말한 “입상진의(立像盡意) - 형상을 세워서 나타내려는 뜻을 온전하게 전한다.“를 가능케 한다. 예를 들어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가상체험이라든가 시뮬레이션 교육은 시각과 청각을 통한 지식전달이 아닌 경험과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교수에서는 옛사람의 지식전달에서는 생각지 못하였던 형상을 세워 온전하게 뜻을 전하는 방법은 더욱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첨단의 기술로 형상을 세워 전달하는 지식 전수의 방법이 있어도 옛 사람의 우려처럼 “깨달음”을 전하기에는 미진하다 판단된다.
오늘의 교육에 비추어 환공윤편문답(桓公輪扁問答)은 배우고자 하는 학습자로 하여금 깨달음에 대한 욕구와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며 교수자로 하여금 깨달음의 진리를 전하는데 있어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방법과 글과 말이 아닌 형상(形狀)으로 온전히 전하고 있는지를 살피게 하여 가르치는 자, 배우고자 하는 자 모두의 뜻과 자세를 가다듬고 경계하게 한다.
장자 - 오강남 옮기고 해설/현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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