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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의 교육, 아테나이의 교육

4. 스파르타의 교육


◈ 스파르타의 교육의 기원


스파르타의 교육은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군사적으로 함몰하여 해결하는 군사국가 교육으로 기원전 9세기 군국주의자 ‘뤼쿠르고스’의 입법에 의하여 귀족적 지배 체제의 확립에 그 근간을 둔다고 보는 것이 통상적이다.


◈ 스파르타 교육의 체제


1) 전통에 따른 국가 지정 훈련방식으로 교육의무의 수행으로 시민권과 토지배당의 권리를 갖는다.

2) 군사적 목적에 부합하는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통제

- 출생시 건강상태를 판별하여 자연사를 유도하고 7세까지 부모양육, 18세까지 ‘에페보스(사관후보생)’의 집단교육, 20세까지 군복무, 30세 이후에야 완전한 시민의 권리를 가질 수 있으며 전투능력 상실시 까지 전쟁참여의 의무를 평생 가진다.


◈ 스파르타 교육의 성격


군국주의적 국가의 큰 특징인 군사적 효율성에 교육 목적을 가지고 일상이 병영생활이며 7세 이후 ‘도(徒)’, ‘제대(梯隊)’에 소속되는 집단교육으로 훈련과 복종의 엄격함을 이루어 자유민이라기보다 군인을 양성한다.


◈ 스파르타 교육의 특징


1) 장·단점

장점

단점

▪ 재치를 길러줌 - 순간의 기지

▪ 신속 정확한 판단을 가르침

▪ 개성을 말살시킴

▪ 삶에 대한 안목이 좁은 시민을 길러냄

2) 실용적인 글 읽기, 종교적 의식의 음악, 전투를 위한 춤에서 보이듯 문학과 예술을 경시하여 지적교육에 있어 매운 편협한 특징을 가진다.

3) 여자의 경우 가사를 전담하는 희랍의 다른 국가와 달리 자유로운 생활과 남자와 비슷한 훈련(교육)을 받음으로 하여 보모나 어머니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5. 아테나이의 교육


◈ 아테나이 교육의 기원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 추정되는 개인인 세운 학교에 대하여 학생의 연령과 등급을 정하고 남자아이에게 수영과 읽기(문자 학습)를 가르칠 목적으로 ‘솔론’이 입법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 사항에 교과나 교육방법에 대하여 정하지 않음으로 다방면의 교육(음악학교)이 실시되었다.


◈ 아테나이 교육의 시대적 구분


‘구교육’과 ‘신교육’으로 구분되며 이는 ‘마테도니아’의 그리스 통일로 구분되어진다. 


◈ 아테나이 구교육의 체계


1) 국가의 일원인 자유민으로 성장하는데 목적을 두고 전쟁뿐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도 훈련을 받았다.

2) 연령대별 교육현황

▪사설 소년 체육관(팔라이스트라, 씨름학교)과 공공 청년 체육관(아카데메이아, 퀴노사르게스)을 통하여 7세에는 놀이, 12세에는 오종경기(높이뛰기, 달리기, 씨름, 창 던지기, 원반 던지기) 중심의 체육훈련을 통하여 전쟁에 대비한 신체적 조건을 갖추게 하였다.

▪ 14세 : 부잣집 아이들은 성인 체육관으로 옮겨서 2년 동안 체육교사의 전문적 지도 하에 보다 높은 수준의 신체 단련 운동을 함.

▪ 16세 : 2년 동안의 교육이 끝나면 공공집회에 참석할 수 있고, 극장과 법정에 출입함.

▪ 18세 : 자유민으로 태어난 아테나이 청년은 시(市)명부에 등재되고 에페보스가 됨.

▪ 19세 : 각종 무기의 사용법과 다양한 전투동작을 배우며 국가가 임명한 교사와 검열관의 감독 하에서 여러 가지 운동경기를 함.

▪ 20세 : 국가로부터 창과 방패를 지급받고, 다시 1년 동안 순찰대의 일원으로 복무하면서 변방을 지키며 밀수업자와 약탈자를 적발함.

3) 음악학교를 통하여 키타리스테스(수금 연구가)가 7세부터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을 교육하였고 시를 암송하고 자신이 부르는 노래에 반주하도록 배웠는데 이는 14세까지 계속되었다.


◈ 아테나이 신교육의 체계


1) 신교육의 발생 배경

▪ 기원전 5세기 전반기 아테나이의 심각한 경제적, 정치적 변화의 결과로 새로운 상인계급이 출현, 기존 지주 귀족 계급과 경쟁을 통하여 자유민의 권리를 지니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확립되었다.

▪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통한 제국의 발전과 국력 확장으로 젊은이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이는 ‘소피스트’라고 불린 새로운 교사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2) 신교육으로 인한 변화

▪ 교육의 변화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신교육에 대한 비판에서 엿볼 수 있다.

『‘구름’이라는 연극(423B.C.)에서 묘사 : 다리를 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어요. 아이들은 “도시의 무서운 약탈자 팔라스”라든가 “멀리서 들리는 비명 소리”같은 가사를,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멜로디에 맞추어 힘차게 고함을 지르면서 외웠어요. 누구든지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거나 요사이 새로 유행하는, 귀에 거슬리는 천박한 떨림 소리를 집어넣는 아이가 있으며, 그 아이는 뮤즈신을 모독하였다고 하여 지독하게 매를 맞았아요.』

구교육에서 실현되었던 엄격함이 없어짐으로 아이들이 겸손하지도 않고 품행도 나빠졌음과 전통적인 서정시와 서사시가 보잘 것 없는 최신 작가가 쓴 작품으로 대치되어 엄격한 단순미가 없어짐으로 교육적 가치가 떨어졌다.

▪ 음악교육과 사장교육 사이에 구분이 생기고 음악교사(키타리스테스)와 문자교사(그라마티스테스)가 존재하였다.

▪ 신교육은 젊은이에게 적극적 교육의 기회를 모색하게 함으로 공공(정치)참여와 순수학문 연구자로 나뉘게 하였고 이는 소피스트와 학파의 등장의 계기가 되었다.

공공참여

순수학문

- 공공활동에 대한 준비로서 젊은이들에게 사장과 수사학 교육을 해 줄 수 있는 외국인 교사로 소피스트 등장.

- 프로타고라스 : 최초의 소피스트, 기원전 450년에 아테나이에 나타남

- 설득의 기술에 관련된 학문에 관심: 범학문적인 철학훈련(논리학, 윤리학, 문학비평)

-퓌타고라스 학파의 영향 하에 있는 소피스트의 지도를 받음.

- 퓌타고라스 학파 : 수학을 연마하는 일종의 종교단체임.

-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음악의 수학적 이론), 산술을 가르침.


◈ 아테나이 교육의 확립


- 산발적이고 비체계적인 신교육은 최초의 아테나이 출신 소피스트인 소트라테스(469-399B.C.)와 플라톤의 등장에 기인하여 기원전 4세기 영구적 형태의 학교로 실현되었다.

이소크라테스

플라톤

▪뤼케이온 근방의 자기 집에 세운 학교

▪수사학을 가르쳐 정치활동 준비

▪아테나이 출신을 제외하고 수업료 받음

▪오로지 문제와 어휘 선정만을 가르침

▪말을 조리 있고 유식하게 하도록 하는 기초로서 생활철학을 가르침 

▪교육 기간이 길었던 만큼 학생들에게 수사학적 기술을 연습할 기회를 더 많이 주었음-이론만 배운 것이 아닌, 실지로 논쟁을 함

▪온갖 주제에 관하여 글을 쓰고 발표, 비판-표현 능력과 함께 삶에 대한 높은 안목을 습득함

▪아카데메이아와 그 주변에 세운 학교

▪철학을 가르침

▪정치적으로 출세한다는 보장이 없음

▪수학과 사변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함

▪실습이나 실제가 아닌 이론에 있음

▪진리탐구

▪소크라테스가 사용한 대화법을 사용-인간과 세계에 관한 근본적인 관념, 사물의 참된 ‘실재’를 발견함

▪대화편에서 선생이 어떤 주제를 내걸어 놓고 학생들의 비판을 받으면서 어느 단계까지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으로 되어 있음